리스크를 이야기할 때 흔히 시장위험이나 사이버위험, 재무위험, 법규위반 위험과 같이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를 먼저 찾으려 한다. 그러나 리스크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리스크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기업이 달성하려는 목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는 위험목록을 만드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리스크는 목표에서 시작한다
기업이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먼저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가 없다면 무엇이 좋은 결과이고 무엇이 나쁜 결과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해외 매출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환율 변동과 해외 규제, 국제 물류, 현지 고객의 수요 등이 중요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면 해외사업이 거의 없는 기업이라면 같은 요인이라도 그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생산설비의 안정적인 가동을 중요한 목표로 삼은 기업이라면 설비고장과 핵심인력 부족, 원자재 공급중단 등이 주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사건이나 조건도 기업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와 중요성이 달라진다. 리스크를 식별할 때 단순히 “어떤 위험이 있는가”라고 묻기보다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에 무엇이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리스크의 출발점은 위험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목표이다.
전략적 목표와 운영 목표
기업에는 여러 수준의 목표가 존재한다. 장기적인 방향과 관련된 전략적 목표가 있는가 하면 일상적인 사업활동과 관련된 운영 목표도 있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새로운 국가나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전략적 목표에 해당할 수 있다.
운영 목표는 제품을 일정한 품질로 생산하여 정해진 시간에 고객에게 제공하고,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고객서비스를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다. 기업에는 이와 함께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유지하고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재무 목표가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보고와 법규 준수 역시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목표가 다르면 관련 리스크도 달라진다. 전략적 목표에는 시장과 경쟁, 기술과 사업모델의 변화가 중요할 수 있으며, 운영 목표에는 사람과 프로세스, 시스템과 공급망의 안정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무 목표에는 금리와 환율, 신용과 유동성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리스크를 하나의 단일 목록으로만 바라보기보다 각각의 리스크가 어떤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리스크와 목표의 관계가 분명해야 해당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와 관리의 우선순위도 분명해진다.
성과와 불확실성의 관계
기업은 목표를 세우면서 일정한 성과를 기대한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생산설비에 투자하면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결과가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신제품의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설비투자의 효과 역시 예상보다 작을 수 있는 반면,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운영효율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성과는 이처럼 예상보다 낮을 수도 있고 높을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여러 가능한 결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며, 리스크 관리의 역할은 그 가운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정확하게 맞히는 데 있지 않다. 가능한 결과의 범위와 각각의 결과가 기업의 목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과와 리스크를 서로 분리하여 평가하기도 어렵다. 성과가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판단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목표보다 낮은 성과가 나왔다고 해서 당시의 판단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떤 불확실성을 감수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당시의 정보와 조건에서 합리적이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가정과 전제도 리스크가 된다
모든 전략과 사업계획은 일정한 가정 위에서 만들어진다. 시장이 앞으로도 성장하고 고객의 소비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원자재 가격이나 금리가 일정 범위에 머물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특정 기술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관련 법률과 규제가 현재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도 사업계획의 전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정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실제로는 시장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고 새로운 경쟁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소비자의 행동이 빠르게 변하거나 규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전략과 사업계획을 지탱하는 핵심 가정이 틀리면 그 가정을 토대로 수립한 계획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기업은 눈에 보이는 위험뿐 아니라 중요한 의사결정이 어떤 가정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기업의 성과를 크게 좌우하는 핵심 가정을 확인하고, 그 가정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가정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이 어떤 가정 위에서 현재의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그 가정이 달라졌을 때 무엇을 바꿀 것인지 파악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목표가 바뀌면 리스크도 바뀐다
기업의 목표와 전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에서 철수할 수 있으며,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도 있다. 사업모델을 오프라인 중심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사업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면 기업이 직면하는 리스크도 함께 달라진다. 기존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리스크가 핵심 리스크로 부상할 수 있는 반면, 과거에 중요했던 리스크의 영향은 줄어들 수 있다. 해외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기업이라면 환율과 현지 규제, 국제 공급망, 현지 파트너와 관련된 문제가 새롭게 중요해질 수 있다. AI를 핵심 업무에 도입한다면 데이터 품질과 개인정보, 모델 오류와 책임문제가 새로운 리스크로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리스크 목록을 한 번 작성한 뒤 같은 항목을 반복적으로 평가하는 방식만으로는 변화하는 기업의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리스크 관리는 기업의 목표와 전략이 변화하는 과정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리스크 관리의 시작은 결국 기업이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를 확인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예상과 달라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기업의 목표가 달라지면 목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달라지며, 그에 따라 관리해야 할 리스크 역시 달라진다. © grc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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