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거버넌스는 권한을 배분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만 정한다고 거버넌스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책임이 있어야 하며,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설명하고 평가받을 책임도 있어야 한다. 거버넌스에서는 권한·책임·설명책임을 하나의 연결된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권한은 의사결정의 범위를 정한다
권한은 특정한 문제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다. 기업에서는 이사회, 경영진, 관리자와 구성원이 서로 다른 권한을 갖는다. 어떤 문제를 이사회가 결정하고, 어떤 권한을 경영진에게 위임하며, 어떤 판단을 현장에서 할 수 있는지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권한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여러 주체가 같은 문제에 개입하거나 아무도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권한을 설계할 때에도 단순히 의사결정권자를 지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결정할 수 있는 범위와 금액, 적용기간, 필요한 사전승인과 보고조건도 함께 정할 필요가 있다.
책임은 맡은 역할의 수행과 관련된다
책임은 부여받은 역할과 업무를 적절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책임만 부여하고 필요한 권한을 제공하지 않으면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반대로 권한은 크지만 책임이 불분명하면 권한 남용과 책임 회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태를 피해야 한다.
권한 없는 책임
책임 없는 권한
책임을 부여할 때에는 필요한 권한뿐 아니라 사람과 예산, 정보와 시간 같은 자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과를 요구하면서 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책임체계는 형식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설명책임은 판단과 결과를 연결한다
설명책임은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자신의 결정과 행동, 그 결과를 설명하고 평가받는 책임이다. 설명책임이 작동하려면 누가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적절하게 기록되어야 하며, 결과가 필요한 주체에게 보고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과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설명책임은 실패한 사람을 찾아 처벌하기 위한 원칙에 머물지 않는다. 설명책임의 중요한 기능은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자신의 판단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결정자는 중요한 정보와 대안을 더 신중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가 예상과 달랐을 때 당시의 판단을 되돌아볼 수도 있다. 설명책임은 책임 추궁뿐 아니라 조직의 학습과 개선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다.
권한의 위임과 감독
기업의 모든 결정을 이사회나 최고경영자가 직접 내릴 수는 없다. 권한은 하위 조직과 관리자에게 위임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임은 단순히 일을 맡기는 행위가 아니다. 적절한 위임에는 다음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권한의 범위 → 성과와 행동의 기준 → 보고체계 → 감독과 개입 조건
위임받은 사람에게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충분한 자율성이 필요하다. 동시에 중요한 상황에서는 상위 책임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상위 책임자가 모든 세부적인 판단에 다시 관여하면 실질적인 위임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업무를 맡긴 뒤 아무런 정보도 받지 않는다면 감독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좋은 위임은 자율성과 감독의 균형을 요구한다.
보고·에스컬레이션·책임 추적
권한과 책임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중요한 정보가 필요한 주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모든 문제를 최고경영자나 이사회에 보고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문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에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조직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는 적절한 수준의 책임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중대한 리스크, 법규 위반, 중요한 내부통제의 실패, 이해상충과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에스컬레이션(Escalation)이라고 한다.
효과적인 에스컬레이션 체계에서는 무엇을 보고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언제 보고해야 하는지, 누가 대응을 결정하고 후속조치에 책임지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보고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행위가 아니다. 필요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점에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특히 불리한 정보를 보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나쁜 소식을 숨기는 조직에서는 공식적인 책임체계가 있어도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 grc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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